[트렌드 | 신(新)노년시대] 이렇게 신나는데 늙을 틈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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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재협 작성일08-07-09 00:00 조회16,6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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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 신(新)노년시대] 이렇게 신나는데 늙을 틈이 어딨어!
댄스 하고 드럼 치고 붓 놀리고
“일단 세상 밖으로 나와봐… 인생이 즐거워져”
‘영 올드(young old)’.
미국 시카고대의 심리학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Neugarten) 교수의 세대 구분법에 따른 용어다.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 시니어’로 본다는 얘기다. 하릴없이 늘어가는 나이 앞에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노인들이 많다. 아프고(病苦) 가난한 것(貧苦)만큼이나 외롭고(孤獨苦) 할 일이 없는(無爲苦)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창조적 취미 생활’. 은발을 휘날리며 무엇인가를 배우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즐거운 실버’의 비결을 묻자 대답은 한결같았다. “집안에 콕 틀어박혀 ‘아프다, 돈 없다’ 타령만 하면 뭐해요. 일단 세상 밖으로 나와봐요. 어허, 그러지 말고 좀 나와 보라니까?”
실버 댄스 동아리 ‘나이야가라’
차차차·자이브·룸바·살사… 흔들며 활력 충전
평균 73세 “불러주면 어디든 달려가 공연”
지난 6월 18일 경기도 광명종합사회복지관. 3층 강당에서 200여명의 어르신들이 신나는 댄스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김성정(46) 강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따라 한 시간여 정신 없이 춤을 추고 있는 어르신들. 방금 세수를 한 듯 얼굴에 땀이 흘렀다.
“아유 잘 했어요. 일반 회원들은 좀 쉬시고. 이번에는 ‘나이야가라’가 본격적으로 연습해 볼까요.”
‘나이야가라’는 복지관의 명물인 실버 댄스 동아리. 색색의 유니폼으로 멋을 낸 20여명의 ‘고수 춤꾼’들이 “젊음을 위하여”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자세를 잡았다. 남자 회원은 하얀 셔츠와 바지에 녹색 나비 넥타이 차림. 구두코는 번쩍번쩍 광이 났다. 여성들은 알프스 소녀처럼 빨간 스커트를 맞춰 입었다. 평균 나이 73세. 최연소 회원이라고 해야 60대 중반이다. 2002년부터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으니 벌써 6년째. 왈츠와 차차차, 자이브, 룸바, 파소도블레, 살사까지 못하는 동작이 없다.
이원하(78)씨는 나이야가라의 창단 멤버다. “난 괜찮다”며 3년 동안 손사래치던 아내 홍금녀(72)씨는 “혼자만 재미있으면 뭐하냐”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복지관을 찾았다. 지금 이씨 부부처럼 나이야가라에서 댄스스포츠의 열정을 함께 불태우는 부부는 모두 세 쌍이다.
“허리를 펴고, 배를 집어 넣고. 턱 꼿꼿이 세우는 것 잊지 마세요. 음악, 갑니다!” “웃으세요, 그래야 젊어져요, 즐거운 마음을 하면 나이가 겁먹고 도망가요. 턱 올리고. 신나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음악 사이로 김성정 강사의 추임새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강당은 나이야가라 회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통통 뛰어다니는 자이브, 감미로운 룸바까지 노인들이 만들어내는 무대는 감탄이 절로 날 정도다.
“노인들은 다칠까봐 좀 센 유산소 운동을 멀리 하는데. 한번 봐요. 노인들에게 댄스스포츠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니까요. 혈압, 당뇨로 고생하다 이걸 배우고 나서 싹 나았다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니 나이 들면 찾아온다는 골다공증도 멀리 도망가지 않겠소? 춤 추는 날 보면 여든 나이가 느껴지우?”
올해 나이 81세. 나이야가라의 최연장자인 김희련 회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2002년 복지관을 찾아 댄스스포츠를 접하기 전까지 김 회장은 한번도 스텝을 밟아본 적이 없는 ‘몸치’ 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2시간씩 신나게 몸을 흔들며 ‘삶의 활력’을 재충전해 간다.
화요일 오후는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춤 솜씨를 가다듬는 날. 김희련 회장은 이날 아침부터 바쁘다. 복지관으로 찾아오는 장애인 아이들 앞에서 ‘춤 선생님’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자체 연습이 끝난 뒤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도 지도한다.
나이야가라는 창단 1년 만에 경기도 대표로 뽑혔고, 노인건강대축제 같은 전국대회에 출전해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어디든 불러주는 곳이면 찾아가 즐겁게 공연하자’고 뜻을 모은 회원들은 한 달에 10차례 안팎의 공연을 나선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며 회원들은 깔깔 웃었다.
“1988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뒤 소일(消日)할 때는 인생이 참 재미없습디다. 그땐 이 좋은 걸 왜 몰랐는지…. 나이를 탓하지 말고 일단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해요. 요즘은 동네마다 시설이 잘 돼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즐길 수 있거든.”
김희련 회장은 “부끄럽다는 생각에 ‘에이’ 하고 고개 돌리지 말고, 눈 질끈 감고 나와서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원들에게 외쳤다. “자, 룸바로 한 번 더 갑시다.”
국립중앙박물관 먹향기 비단을 만나서
뒤늦은 예술 열정… “배움에 나이가 어디 있나”
돈 없어 못해? 무료강좌만 다녀도 하루가 부족
지난 6월 17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1층의 실기실에서는 ‘먹 향기 비단을 만나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무 틀에 비단을 대고 그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 뒤 채색하는 과정.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 등 사군자를 백묘법(白描法)으로 그린 밑그림을 기름종이(油紙)에 베껴내고, 비단 그림틀 뒤에 댄 뒤 비쳐지는 상을 붓으로 옮겨 그리는 작업이다. 손이 빠른 어르신은 섬세한 필법으로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공필(工筆) 작업까지 하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의 색감이 살아나도록…. 비단이기 때문에 너무 진하게 채색하지 말고 살짝만요. 붓을 쓸 때는 항상 물기를 조절하시고요.”
동양화가인 조미영(36)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강사의 붓끝을 응시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국화 채색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우국성(63)씨. 작년 8월 숭곡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1년 교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우씨는 박물관과 미술관 강좌를 잇달아 수강하면서 은퇴 후유증을 달랬다. 은퇴를 앞두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울거리’를 찾았다.
“평생 남을 가르치면서 살아왔는데, 환갑이 지난 나이에 뭔가를 배우게 되니 참 새롭고 좋습니다.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는데요. 내 안에 작지만 소중한 것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우씨는 중앙박물관의 한국화 프로그램 이외에도 주변의 노인시설을 충분히 활용한다고 했다. 구리시 교문동 집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주중에는 헬스 시설을 이용하고, 매주 두 차례 일본어 강좌에도 참석한다.
“혼자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참 좋아요. 어딜 가나 남자 수강생은 10~20% 정도인데, 탑골공원이나 지하철 환승역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지 말고 좀더 가치 있게 시간을 활용했으면 합니다. 찾아보면 노년을 위한 평생교육 시설이 꽤 되거든요.”
이번 프로그램의 반 대표를 맏고 있는 권태웅(73)씨도 이곳 외에 몇 곳의 강좌를 찾아다니느라 일주일이 바쁘다. 2년 전 현업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뒤부터는 자신을 재충전하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시민대학에 나가고, 특강이 있으면 이촌동 집에서 안양시청까지 찾아갑니다. 지하철이 공짜고, 다니기엔 불편이 없어요.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노인들을 상대로 한 컴퓨터 교육에서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죠. 돈 없어서 뭐 못한다는 소리는 다 핑계예요. 소주 한잔 마실 돈으로 한 달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요.”
권씨는 “노인들도 정보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친구 사귀고 좋은 이야기 들으라는 말, 젊은이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과의 끈을 놓으면 절대 안 돼요. 노인들은 안 바쁘면 확 늙어요. 매일 시간표 정해놓고 바쁘게 돌아다녀야 해요. 특히 남자들은 더 그래요.”
조미영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지도하면서 젊은 사람과는 또 다른 치열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라도 허투루 듣지 않고 더 깊이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에 흠뻑 빠져 있는 노인들의 모습, 참 아름답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시니어 미술강좌
여백 채워갈수록 공허함 사라지고 존재감 뿌듯
즐겁게 그린 그림은 척 봐도 달라… 건강은 보너스
6월 18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실기실. ‘2008 시니어 미술강좌’의 한국화 중급과정 실습이 열리는 곳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돌이나 바위의 질감과 입체감을 묘사하는 준법(?法). 지난 4월 초 시작해 25주 동안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이번 과정에는 16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있다.
“동양화는 점으로 표현하는 우점준(牛點?), 선으로 하는 피마준(披麻?), 도끼자국처럼 면이 생기는 부벽준(斧劈?)이 있습니다. 조형의 기본 단위인 점·선·면이 동양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이는 거죠.”
한국화가인 김현철(50) 강사의 설명을 어르신들은 꼼꼼히 메모했다. 김현철 강사는 어르신 실습생들의 붓놀림을 일일이 지켜보며 도움말을 줬다. “힘을 주지 말고 붓을 가볍게 쥐세요. 그래야 붓끝의 탄력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 2003년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했다는 임부남(68)씨는 “마음을 다스리고 개인 수양을 하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일을 놓고 난 순간의 공허감, 그걸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몰입이라던 임씨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붓을 들고 화선지를 대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워요. 노인정에서 고스톱치는 것보다 얼마나 보기 좋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척 봐도 다르죠. 그림 그
댄스 하고 드럼 치고 붓 놀리고
“일단 세상 밖으로 나와봐… 인생이 즐거워져”
‘영 올드(young old)’.
미국 시카고대의 심리학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Neugarten) 교수의 세대 구분법에 따른 용어다.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 시니어’로 본다는 얘기다. 하릴없이 늘어가는 나이 앞에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노인들이 많다. 아프고(病苦) 가난한 것(貧苦)만큼이나 외롭고(孤獨苦) 할 일이 없는(無爲苦)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창조적 취미 생활’. 은발을 휘날리며 무엇인가를 배우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즐거운 실버’의 비결을 묻자 대답은 한결같았다. “집안에 콕 틀어박혀 ‘아프다, 돈 없다’ 타령만 하면 뭐해요. 일단 세상 밖으로 나와봐요. 어허, 그러지 말고 좀 나와 보라니까?”
실버 댄스 동아리 ‘나이야가라’
차차차·자이브·룸바·살사… 흔들며 활력 충전
평균 73세 “불러주면 어디든 달려가 공연”
지난 6월 18일 경기도 광명종합사회복지관. 3층 강당에서 200여명의 어르신들이 신나는 댄스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김성정(46) 강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따라 한 시간여 정신 없이 춤을 추고 있는 어르신들. 방금 세수를 한 듯 얼굴에 땀이 흘렀다.
“아유 잘 했어요. 일반 회원들은 좀 쉬시고. 이번에는 ‘나이야가라’가 본격적으로 연습해 볼까요.”
‘나이야가라’는 복지관의 명물인 실버 댄스 동아리. 색색의 유니폼으로 멋을 낸 20여명의 ‘고수 춤꾼’들이 “젊음을 위하여”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자세를 잡았다. 남자 회원은 하얀 셔츠와 바지에 녹색 나비 넥타이 차림. 구두코는 번쩍번쩍 광이 났다. 여성들은 알프스 소녀처럼 빨간 스커트를 맞춰 입었다. 평균 나이 73세. 최연소 회원이라고 해야 60대 중반이다. 2002년부터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으니 벌써 6년째. 왈츠와 차차차, 자이브, 룸바, 파소도블레, 살사까지 못하는 동작이 없다.
이원하(78)씨는 나이야가라의 창단 멤버다. “난 괜찮다”며 3년 동안 손사래치던 아내 홍금녀(72)씨는 “혼자만 재미있으면 뭐하냐”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복지관을 찾았다. 지금 이씨 부부처럼 나이야가라에서 댄스스포츠의 열정을 함께 불태우는 부부는 모두 세 쌍이다.
“허리를 펴고, 배를 집어 넣고. 턱 꼿꼿이 세우는 것 잊지 마세요. 음악, 갑니다!” “웃으세요, 그래야 젊어져요, 즐거운 마음을 하면 나이가 겁먹고 도망가요. 턱 올리고. 신나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음악 사이로 김성정 강사의 추임새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강당은 나이야가라 회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통통 뛰어다니는 자이브, 감미로운 룸바까지 노인들이 만들어내는 무대는 감탄이 절로 날 정도다.
“노인들은 다칠까봐 좀 센 유산소 운동을 멀리 하는데. 한번 봐요. 노인들에게 댄스스포츠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니까요. 혈압, 당뇨로 고생하다 이걸 배우고 나서 싹 나았다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니 나이 들면 찾아온다는 골다공증도 멀리 도망가지 않겠소? 춤 추는 날 보면 여든 나이가 느껴지우?”
올해 나이 81세. 나이야가라의 최연장자인 김희련 회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2002년 복지관을 찾아 댄스스포츠를 접하기 전까지 김 회장은 한번도 스텝을 밟아본 적이 없는 ‘몸치’ 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2시간씩 신나게 몸을 흔들며 ‘삶의 활력’을 재충전해 간다.
화요일 오후는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춤 솜씨를 가다듬는 날. 김희련 회장은 이날 아침부터 바쁘다. 복지관으로 찾아오는 장애인 아이들 앞에서 ‘춤 선생님’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자체 연습이 끝난 뒤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도 지도한다.
나이야가라는 창단 1년 만에 경기도 대표로 뽑혔고, 노인건강대축제 같은 전국대회에 출전해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어디든 불러주는 곳이면 찾아가 즐겁게 공연하자’고 뜻을 모은 회원들은 한 달에 10차례 안팎의 공연을 나선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며 회원들은 깔깔 웃었다.
“1988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뒤 소일(消日)할 때는 인생이 참 재미없습디다. 그땐 이 좋은 걸 왜 몰랐는지…. 나이를 탓하지 말고 일단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해요. 요즘은 동네마다 시설이 잘 돼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즐길 수 있거든.”
김희련 회장은 “부끄럽다는 생각에 ‘에이’ 하고 고개 돌리지 말고, 눈 질끈 감고 나와서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원들에게 외쳤다. “자, 룸바로 한 번 더 갑시다.”
국립중앙박물관 먹향기 비단을 만나서
뒤늦은 예술 열정… “배움에 나이가 어디 있나”
돈 없어 못해? 무료강좌만 다녀도 하루가 부족
지난 6월 17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1층의 실기실에서는 ‘먹 향기 비단을 만나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무 틀에 비단을 대고 그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 뒤 채색하는 과정.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 등 사군자를 백묘법(白描法)으로 그린 밑그림을 기름종이(油紙)에 베껴내고, 비단 그림틀 뒤에 댄 뒤 비쳐지는 상을 붓으로 옮겨 그리는 작업이다. 손이 빠른 어르신은 섬세한 필법으로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공필(工筆) 작업까지 하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의 색감이 살아나도록…. 비단이기 때문에 너무 진하게 채색하지 말고 살짝만요. 붓을 쓸 때는 항상 물기를 조절하시고요.”
동양화가인 조미영(36)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강사의 붓끝을 응시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국화 채색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우국성(63)씨. 작년 8월 숭곡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1년 교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우씨는 박물관과 미술관 강좌를 잇달아 수강하면서 은퇴 후유증을 달랬다. 은퇴를 앞두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울거리’를 찾았다.
“평생 남을 가르치면서 살아왔는데, 환갑이 지난 나이에 뭔가를 배우게 되니 참 새롭고 좋습니다.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는데요. 내 안에 작지만 소중한 것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우씨는 중앙박물관의 한국화 프로그램 이외에도 주변의 노인시설을 충분히 활용한다고 했다. 구리시 교문동 집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주중에는 헬스 시설을 이용하고, 매주 두 차례 일본어 강좌에도 참석한다.
“혼자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참 좋아요. 어딜 가나 남자 수강생은 10~20% 정도인데, 탑골공원이나 지하철 환승역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지 말고 좀더 가치 있게 시간을 활용했으면 합니다. 찾아보면 노년을 위한 평생교육 시설이 꽤 되거든요.”
이번 프로그램의 반 대표를 맏고 있는 권태웅(73)씨도 이곳 외에 몇 곳의 강좌를 찾아다니느라 일주일이 바쁘다. 2년 전 현업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뒤부터는 자신을 재충전하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시민대학에 나가고, 특강이 있으면 이촌동 집에서 안양시청까지 찾아갑니다. 지하철이 공짜고, 다니기엔 불편이 없어요.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노인들을 상대로 한 컴퓨터 교육에서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죠. 돈 없어서 뭐 못한다는 소리는 다 핑계예요. 소주 한잔 마실 돈으로 한 달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요.”
권씨는 “노인들도 정보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친구 사귀고 좋은 이야기 들으라는 말, 젊은이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과의 끈을 놓으면 절대 안 돼요. 노인들은 안 바쁘면 확 늙어요. 매일 시간표 정해놓고 바쁘게 돌아다녀야 해요. 특히 남자들은 더 그래요.”
조미영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지도하면서 젊은 사람과는 또 다른 치열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라도 허투루 듣지 않고 더 깊이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에 흠뻑 빠져 있는 노인들의 모습, 참 아름답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시니어 미술강좌
여백 채워갈수록 공허함 사라지고 존재감 뿌듯
즐겁게 그린 그림은 척 봐도 달라… 건강은 보너스
6월 18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실기실. ‘2008 시니어 미술강좌’의 한국화 중급과정 실습이 열리는 곳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돌이나 바위의 질감과 입체감을 묘사하는 준법(?法). 지난 4월 초 시작해 25주 동안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이번 과정에는 16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있다.
“동양화는 점으로 표현하는 우점준(牛點?), 선으로 하는 피마준(披麻?), 도끼자국처럼 면이 생기는 부벽준(斧劈?)이 있습니다. 조형의 기본 단위인 점·선·면이 동양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이는 거죠.”
한국화가인 김현철(50) 강사의 설명을 어르신들은 꼼꼼히 메모했다. 김현철 강사는 어르신 실습생들의 붓놀림을 일일이 지켜보며 도움말을 줬다. “힘을 주지 말고 붓을 가볍게 쥐세요. 그래야 붓끝의 탄력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 2003년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했다는 임부남(68)씨는 “마음을 다스리고 개인 수양을 하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일을 놓고 난 순간의 공허감, 그걸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몰입이라던 임씨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붓을 들고 화선지를 대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워요. 노인정에서 고스톱치는 것보다 얼마나 보기 좋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척 봐도 다르죠. 그림 그